AshRock
오늘날의 몰입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더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행복한 미개인을 주장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인류는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누군가 처음 울타리를 짓고 자신의 소유를 주장한 순간부터 인위적인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과거인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생존의 위협으로 본능적 두려움이 컸지만 선택지가 제한적이기에 삶이 단순했다. 반면 현대인은 생존이 보장되었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신적 피로와 불안을 겪는다.
현대의 우리는 사회적 역할, 거주지, 국가, 종교, 신념 등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는 입을 옷, 가구, 생활용품 등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은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 무한한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지나친 비교와 망설임에 빠져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물론 신중한 결정과 정보 탐색 수단을 가진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행동과 관념 간의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야 하는 관계인데, 관념만이 힘을 얻는다.
"그렇듯 양심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러므로 결연함의 본래 빛깔은 생각의 창백한 그늘에 물들어 시들어 가며, 중대한 결의와 순간의 위대한 일들도 이로 인해 그 흐름이 어긋나 결국 ‘행동’이라는 이름조차 잃어버린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Act 3, Scene 1)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지나친 생각은 행동을 가로막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행동은 줄어들고 몰입 경험은 사라져 간다.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일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를 모아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SNS처럼 수동적인 여가에만 시간을 쓰게 된다. 아무것도 해결될 리 없다. 성장 없이 엔트로피만 커질 뿐이다. 기껏해야 의식의 질서가 붕괴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뿐이다. 자아는 주입받은 대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자아에 복합성이 생길 리 없다. "너 자신을 알라", "고유한 삶", 『데미안』의 아브락사스 같은 덕목을 믿는 사람에게 위와 같은 무의미한 삶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이처럼 동물은 비역사적으로 산다. 그것은 마치 수처럼 현재에 스며들어 기이한 단절이 전혀 남지 않는다. 자신을 꾸미거나 숨김 없이 매순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나타나기에, 정직할 수밖에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중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루소가 말한 ‘행복한 미개인’은 제한된 선택 속에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만족을 누렸지만, 우리는 무수한 자유와 복잡한 선택지가 주어진 존재로서, 그 단순한 몰입을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 삶에 맞게 행동과 사색 사이의 균형을 찾아, 본능적 몰입과 의식적 선택을 조화롭게 결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몰입 경험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확신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행위는 무엇인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선택지를 하나씩 줄이는 것이다. 하루 중 불필요한 소모 시간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하나씩 줄여가 보자. 예컨대 불필요한 앱을 삭제하거나, 인간관계를 줄여나가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선명해진다. 아무것도 없다는 상태가 더욱 분명해질 수도 있고, 소중하지만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없애버린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다. 아무것도 없다면 채우면 되고, 소중했다면 되찾으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삶을 바칠 만한 하나의 궁극적 목적을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를 품은 채 일상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는 삶이다. 그렇게 나만의 좋은 삶을 만들어가며, 목적을 향한 여정에서 두려움과 망설임에 압도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 여정이 마음의 여유를 선물하고, 먼저 타인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는 하루를 가능케 하며, 공허함 대신 만족스러운 밤을 채워줄 것이다. 결국 어떤 순간에도 후회 없이 삶을 마주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삶을 충만히 살아내는 것—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좋은 삶이다.